보랏빛 유채의 바다 한가운데
한 송이 붉은 양귀비가
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
시선을 붙든다.
햇살은 부드럽게 색을 덜어내고
바람은 붓끝처럼 스쳐 지나며
그 피빛 붉음을 조심스레
풍경 위에 얹는다.
그 붉음은 말이 없고
그 붉음은 이유조차 없다.
그러나 세상 가장 뜨겁고도
고요한 아름다움된다.
바람이 꽃잎을 흔들면
나는 붓끝을 따라 미묘히 떨고
햇살이 그 얼굴을 비추면
나는 색채를 더한층 밝게 입힌다.
양귀비 한 송이를 그린다는 것은
단지 꽃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
그건 찬란한 하루의 심장을
물감으로 번역해내는 일이다.
색 하나가 계절의 결을 바꾸고,
꽃 하나가 마음의 풍경을 그려내듯
내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
한 송이 양귀비를 피워 낸다
- 영천 보라유채밭에서 -